원광대와 익산시 협업으로 익산


쉬운 목차

원광대학교, 익산시와 함께 익산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책자 발간

-‘해방 후 익산에서 미군정 활동‘, ‘파스타 집등 익산문화도시 익산학술사무국 2용량

원광대학교(회장 박성태)익산은 익산시와 익산시가 공동으로 진행한 일련의 연구를 조사한다.
해방 후 익산에서 미군정 활동‘, 한국어 번역 파스타 집등. 2테이프가 나갔다.

해방 후 익산에서 미군정 활동해방 직후 익산에 주둔한 미군기지익산지역의 현황을 기록한 특보입니다.
파스타 집조선 중기의 광해군과 인조 때의 금마와 금마의 면와眠窩 소동도蘇東道 앤솔로지입니다.

두 책 모두 익산의 숨은 역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는 역사 발굴의 의의가 있다.
해방 후 익산에서 미군정 활동번역과 해설은 김귀성 은원광대학교 교육학과 김귀성 명예교수가 맡는다.
하나수년간의 노력 끝에 결실을 맺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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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책은 미군에 의해 해방 직후 한국의 주요 도시들을 요약한 것이다.
‘특별보고’익산 진주한제28번역 및 주석이 추가된 군사 정부 보고서 등 ‘특별보고’전 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이 발굴하여 소장하고 김귀성 교수가 기증, 번역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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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1945해방 직후 현실에 정착한 미국은 일본과 한국 사회에 대해 어떤 정책과 태도를 취했는가?, 특히 이번 보고서에서는 이들이 일제 및 친일 관계자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.
, 해방 직후 지역사회에 대한 보고나 연구가 전국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당시 지역사회의 상황과 변화를 확인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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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동안파스타 집번역과 해설은 원광대학교 중어교육과 김창호 교수가 맡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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면와 소동도는 익산 지성사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양곡 소세양의 증손자이다.
, 세양과 그의 후손인 진주 소씨 가문은 조선 중기 사상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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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히 성균관의 유학자 소동도는 광해군 때 인목왕후의 폐지운동에 가담하기를 거부하고 익산으로 돌아갔다.
,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송시열과의 은밀한 관계는 그의 학문적 깊이와 삶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표본으로 알려져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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간행된 면와집에는 소동도가 남긴 한시와 그가 관생 중에 간행한 호소문이 실려 있다.
, 장계 등은 원문 그대로 게재하였다.
, 김창호 교수 등은 한글판과 함께 장문의 해설을 덧붙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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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국어 번역 작업을 하신 김창호 교수님께서 면과 소동도는 소세양 이후 학문적 익산계통 형성에 있어 가장 먼저 주목받는 인물로 꼽힌다.
~처럼소동도와 송시열의 인연 1919세기 익산지성의 역사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됨설명./익산고재홍 기자>